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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사우 이경수 영전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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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9-08-21 23:01 조회2,01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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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한없이 가엾고 슬프다. 외우(畏友) 이경수 학형의 돌연한 서세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한 충격과 비통함에 때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지난 81일 사랑하는 벗은 홀연히 이 세상을 떠났다. 그 어떤 만사와 뇌문으로도, 그의 많은 벗들의 비통함을 위로하지 못한다. 구차한 삶에 연연하는 나는 결국 내 곁의 뛰어난 지음(知音), 탁월한 의인(義人)을 먼저 잃었다.

절조 높은 청아한 선비와 군진에 서 있는 용감한 장수에게 요절을 논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면,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는 경수의 너무 이른 죽음 앞에서 재사단명 미인박명의 옛말이 떠오르는 것이 크게 그르지 않다.

너무도 아깝다. 하늘은 그토록 무심하나. 하늘은 때때로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일찍 데리고 가는 일들이 많아서, 많은 군자현인들이 천도라는 것이, 또는 올바른 길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를 항상 의심하게 만들어왔다.

인생무상, 생사일여라지만 그의 짧았던 생애를 깊이 연민하며 통곡의 눈물은 앞을 가린다. 우리는 오랫동안 벗의 죽음을 한없이 슬퍼하며 서쪽하늘의 붉은 석양을 처연히 바라보게 될 것이다.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나날보다 훨씬 짧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는 죽는 그 순간까지 그를 기억하며 추모할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만나 60년에 가까운 긴 세월을 동병상련, 동고동락하며 그와 함께 보냈음을 못난 벗은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는 잊을 수 없는 죽마고우였고 우러러 볼 큰 산과 같은 사우(師友)였다. 스승으로 삼을 수 없다면 진정한 벗이 아니고, 벗할 수 없다면 참다운 스승이 아니다. 그는 옛 사람들의 높은 가르침들을 실제로 보여준 고귀한 벗이자 스승이었다.

자업자득의 박복한 삶의 한가운데에서 속절없이 늙어가고 있는 내가 부모형제가 사라진 고향 부산을 그나마 찾아가는 것은, 경치로는 해운대를 보고 사람으로서는 이경수를 만나는 것이었건만, 이제 부산을 찾을 이유의 절반 이상을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수는 눈물겹도록 고마운 궁핍한 날의 벗이었다. 어느 해인가. 세상살이가 뜻 같지 아니하여, 상당한 금액을 빌려줄 것을 갑자기 부탁하자, 경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그래, 빌려줄게. 그런데 이 돈은 네가 나중에 형편이 되면 갚고, 형편이 안 되면 안 갚아도 된다.”며 흔쾌히 거액을 내놓았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친구를 웃게 한 자는 천국에 갈 자격이 있다, 경수의 저 생()에서의 행로는 명백하다.

이런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인은 많은 친구들에게, 어쩌면 막대하다고도 할 수 있는 소중한 돈 앞에서도, 이처럼 너그럽고 후덕했다. 재물을 생명 이상으로 다투고, 몇 푼의 돈 때문에 형제간의 우애나 친구간의 우정도 크게 엇갈리는 염량세태의 인심을, 전중하고 노성한 그는 크게 넘어섰다. 술에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수백에 이르는 주식지우(酒食之友)가 아닌 어려울 때의 친구, 진정한 급난지우(急難之友)의 하나였다. 나이가 먹을수록 옹졸하고 더욱 인색하게 늙어가는 우리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탁연한 경지이자 초절한 대인장자(大人長者)의 풍모가 아닐 수 없다.

질박하고, 어질고, 도량이 크고, 거룩하기까지 한 그를, 나 같은 사람은 백 명을 거듭해도 따라잡을 수 없다. 고인은 청수 고결한 인품이 있었고, 재능과 총명이 출중했으나 늘 겸손했다. 특히 그는 명문 부산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수재였으나, 언제나 자신을 낮추면서 성취가 더딘 친구들을 이끌고 가르치면서 학업과 공부를 격려하고 응원했다.

특히 그는 음악과 미술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테니스와 골프 등 각종 스포츠에도 만능 수준이었다. 대학 시절에는 수시로 홍익대 미술대를 찾아 그림에 몰입했었고, 부산에서 개업의로 자리 잡은 이후에도 무의촌 의료봉사 등에 즐겨 자주 참가했다. “나는 좋은 학교 나오고 사회로부터 혜택을 많이 입은 셈이다. 어려운 사람들 도우는 일을 계속 하는 것이 맞다. 우리는 앞으로 그렇게 살자.” 나는 지금도 한없이 젊은 날에 그가 나에게 한 이 말이 결코 잊히지 않는다.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이들을 돕고자 하는 그의 고운 성품은, 그가 걸어간 의업(醫業)이라는 성직에서 인술(仁術)로 계속 이어졌으리라.

그가 평소에 보인 소쇄한 기상과 고결한 풍격으로 보아, 자신의 죽음을 두고 친구들이 보내는 과장된 애사나 미사여구를 추호도 바라지 않을 것이나, 부끄럽게도 시시하게 오래 살고 있는 벗은 이럴 수밖에 없는 형편과 처지를 끝내 한탄한다.

또다시 눈물을 쏟으며 통곡한다. 그가 남긴 덕행(德行)과 고매한 인품의 향기를 스승으로 삼아 앞으로의 생애를 더 이상 초라하고 졸렬하게 만들지 않을 것을, 아직도 살아있는 어리석은 벗은 고인에게 고개를 숙여 감히 약속하며, 뜻이 글을 이기지 못하는 졸문을 허망한 심정이 되어 마감한다.

아아, 그리운 벗이여, 아아, 너무도 멀리 떠난 스승이여,

부끄러운 벗의 숱한 잘못들을 너그럽게 용서하소서.

아아아아

언젠가 훗날에 우리가 찬란한 황금빛 구름이 되어 천상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인지.

경수여, 이제 이 생의 모든 분주했던 일들을 모두 잊으시고 저 높은 길을 걸으소서. 흠향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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